바울의 영성과 이방인 선교 | 정진권 | 2021-11-07 | |||
|
|||||
바울의 영성과 이방인 선교 행9:10-19 1. 초대교회는 두 기둥이 세워져 갔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입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 기독교의 리더라면, 바울은 이방교회의 리더로서 베드로와 맞먹는 사도였습니다. 초대 교회는 율법을 중시하고, 예루살렘성전 중심적인 유대인들이 중심이 된 교회와, 예수님을 그리스로도 고백하는 부활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이방인이 중심이 된 교회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 중에서도 혈통의 순수성을 자랑하는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으로 공회의 회원이었고, 당시 최고의 라반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공부하였습니다. 바울은 기독교를 세계화시킨 사람입니다. 당시 세계 공용어로 사용하는 헬라어에 능통하여 로마제국의 중심도시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가는 곳 마다 교회를 세운 선교사였습니다. 복음을 헬라어로 기록하여 각 지역교회에 보냈습니다. 신약 성경 27권 가운데 13권은 바울이 쓴 편지입니다. 만약 바울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아람어를 쓰는 팔레스타인 갈릴리 지역의 작은 소종파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2. 바울의 선교사명은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한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바울은 철저한 바리새파 율법주의자로서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 선 사람이었고, 예수 믿는 사람을 지독하게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예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고, 복음을 증거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다소 사람이 예루살렘에 유학하여 30대에 유대교 공회원이 될 정도로 성공하고, 유대교의 투사가 되었습니다. 청년 사울은 살기등등하여 다메섹 회당에 다니면서 예수 믿는 사람을 만나면 체포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가는데 홀연히 하늘에서 빛이 비취고,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땅에 엎드려진 바울은 눈은 떴으나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리어 직가 라는 동네에 유다의 집에 들어가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머물러 기도하고 있던 중, 주께서 보낸 아나니아를 만나서 안수를 받고, 시력을 되찾고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9행전9:15). 이 말씀을 사도바울은 평생 가슴에 품고 전도자로 살았습니다. 3. 바울의 회심과 소명을 받는 사건에서 하나님 음성듣기 하는데 중요한 방법 하나가 있습니다. 베드로처럼 직접 예수님에게 음성을 들은 것이 아니라 바울처럼 다른 사람에 의하여 듣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베 드로는 디베리아 바닷가에서 직접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았지만, 바울은 다메섹의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와서 안수 할 때 이방선교에 대한 사명을 전달 받은 것입니다. 바울은 아나니아에게 받은 사명을 계속 확인하며 고백해 나아갔습니다. (행전 22:21. 26:16-17). 바울의 음성듣 기는 한 번 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꿈에 환상가운데 “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는 마게도냐 사람이 말한 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실라와 누가와 디모데를 데리고 배를 타고 유럽으로 나아갔습니다. 단 한 번에 하나님의 음성이 명확하게 들리고, 하나님의 사명을 단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일목요연하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사명은 아주 사소하고,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작은 일 가운데서 세미하게 관찰해 보면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을 하고, 작은 일에 충성을 다 하는 사람에게 또 다른 사명과 비전을 주시는 것입니다. 함대 사령관이 부하 장교에게 작전 명령을 내리는데도 한 꺼 번에 작전 시작부터 마지막 까지 전 과정을 띄어주지 않는 다고 합니다. 비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어느 지점까지 명령을 내리고, 한 작전을 마치면 다음 지점으로 모이게 하고 거기서 한 작전을 시행하고, 다음 작전을 지시하고, 이렇게 여러 번 나누어서 작전을 지시하고 마지막 작전까지 나아간다고 합니다. 영성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속적이고 점진적으로 나아갑니다. 4. 바울은 자신이 이방선교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종으로 세움 받은 것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생명을 바쳤습니다. 바울이 제3차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들어가면서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한 송별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전20:24 말씀입니다. 바울이 처음부터 이방선교의 사명을 받고 나간 것이 아닙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유대주의의 고정관념을 깨고, 다메섹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직가 유다의 집에서 아아니아에게 이방선교의 사명을 받고, 고향 다소에 가서 3년 동안이나 하나님 말씀묵상하며 훈련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바울을 마침내 안디옥으로 부르시고, 안디옥 교회에서 바나바와 함께 사역하다가 이방의 선교사로 나선 것입니다. 5. 바울은 유창한 말과 글로서만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에베소 교회에서는 바울이 가지고 있는 손수건과 앞치마를 만지고 병든 자에게 대면 낳았습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양하니 옥문이 열리고 수감이 풀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드로아에서 3층 건물의 문에 걸터앉아서 설교를 듣다가 떨어져 죽은 유두고를 살렸습니다. 로마로 가던 중 유라굴라 광풍을 만나 메리데 섬에 도착하여 불을 피워놓고 옷을 말리다가 독사에게 물렸지만 손가락 하나 상하지 아니 했습니다. 마가16:18 말씀을 이루신 사건입니다. 6. 바울은 아시아 여러 지역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바울은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서 복음을 전하는 정주(定住)목회자는 아니하였습니다. 사역자의 집을 세워 복음의 자리를 만들고, 사역자를 파송하였습니다. 사역자의 집이 처소 교회가 된 것입니다. 바울이 처음 시작한 교회는 가정교회였습니다. 빌립보에 도착하여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 복음자리를 폈습니다. 루디아의 집으로 부터 빌립보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에는 야손 형제의 집이 있었고, 고린도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놀라운 조직가입니다. 가정 중심으로 믿는 사람을 조직화 하였고, 사자를 파송하였습니다. 조직이 필요한 것은 믿음을 유지하고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바울과 함께 사역한 사람이 20 여명의 이름을 거명하였습니다. 바울의 복음자리를 세우는 것과 복음 전도자를 파송제도를 그대로 선교현장에 적용한 사람이 있습니다. 요한 웨슬리입니다. “세계는 나의 교구다” 라고 선언하고, 나는 속회가 조직되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고 말하였습니다. 복음을 심어도 복음이 자라날 복음자리와 가꿀 사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을 모아서 속회(Class)를 조직하였습니다. 밴드(Band)에서 철저히 속회를 인도할 지도자들을 양육하고 훈련시켰습니다. 권역(圈域)마다 소사이어티(Society)를 결성하여 감리교도들이 믿음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생활 공동체를 건설하였습니다. 7. 사도바울의 이방인 선교전략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울의 선교를 후원하는 선교단입니다. 선교는 혼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나바 디모데 아볼로 마가 누가 실라 아리스타고 세군도 가이오 두기고 뵈뵈 등.. 20여 명의 사역자가 바울을 도와서 사역하였습니다. 선교 현장으로 가는 사람이 있으려면 보내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울 일행을 아시아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바울의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여 위대한 하나님 선교(Missio Dei) 역사를 세워 갔습니다. 빌립보 교회와 마게도니아 교회, 고린도 교회, 에베소 교회 등.. 아시아의 여러 교회들이 극빈함 속에서도 선교헌금을 모아서 바울 선교를 지원하였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건축업을 하면서 바울을 따라다니면서 바울을 지원하였고, 빌립보 교회 루디아는 선교후원금을 열심히 댔습니다. 아리스타고는 항상 바울 곁에서 허드레한 일들을 돌보았습니다. 두기고는 편지를 가지고 여러 교회에 다니며 전달하였습니다. 누가는 바울의 행적을 기록하였습니다. 20세기 아프리카의 성자 알버트 슈바이저(Albert Schweizer) 뒤에는 그의 친지 친구들의 어마어마한 재정적인 지원이 있었습니다. 미국 대각성운동의 주도하고 세계 최고의 선교사라고 하는 무디 (D.L.Moody)도 마찬가지입니다. 워너메리카(John Wanamaker)와 같은 미국 부자들의 재정지원이 있었습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