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내시의 믿음 | 정진권 | 2021-10-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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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내시의 믿음 행8:26-36 1. 아프리카 대륙에서 기독교 국가로 분류되는 나라가 몇이 됩니다. 우간다는 85%가 기독교인입니다. 남아공이 80%, 케냐는 78%가 기독교인입니다. 주로 개신교들입니다. 서유럽의 식민지 시대에 복음이 전파된 나라들입니다. 또 한 나라가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입니다. 에티오피아는 61%가 기독교인인데, 50%가 동방종교이고, 신교는 10%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거의 없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 입니까? 에티오피아는 식민지의 시대에 형성된 서방 기독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19세기 서유럽의 아프리카 식민지 이전에 복음이 전파된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에피오피아는 빌립 집사가 간다게 여왕의 내시(=재무장관)를 전도함으로 복음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180년 전, 리빙스턴이 아프리카를 탐험하기 이전부터 아프리카 대륙에서 거의 유일한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한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한 사람의 전도가 얼마나 큰 역사를 만들었습니까?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가 아니라 수천 배 수만 배의 열매가 나타난 것입니다. 2.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빌립이 에디오피아의 내시를 전도한 것을 중요하게 기록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 어떻게 복음을 세계화시켜 나아갔는지, 복음이 어떻게 유대 땅을 넘어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유럽으로 전파하였는지, 말씀하려는 것입니다. 빌립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사도들이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멈춘 복음의 마지노선을 뚫고 사마리아로 나아갔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사마리아 성을 뚫은 빌립을 아프리카 선교의 교두보로 세우기 위하여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빌립은 성령과 친밀하게 지내고, 성령의 움직이심에 아주 민감하게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 3. 오늘은 에티오피아 내시의 신앙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내시의 신앙은 성경 말씀에 집중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마차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정도로 말씀에 집중하였습니다. 믿음은 말씀 중심이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을 깨달을 때 믿음이 생기고, 말씀으로 살 때 믿음의 열매를 맺고, 성령의 나타나심과 성령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성경말씀을 제처 놓고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바라고 기대합니다. 20세기 최고의 기적을 행하면서 성령사역을 한, 케네스 하긴(Kenneth Hagin)은 “우리가 영적으로 자라나기를 원한다면 지혜의 영과 그리스도의 계시을 받아 그의 말씀을 나의 말씀으로 소유해야 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1-2년은 몰라도 10년, 20년을 믿어도 말씀이 잘 안 들어오시는 분이 계십니까? 말씀이 들리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계시의 영, 지혜의 영을 구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엡1:17).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부탁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진 말씀이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이 있을 때 깨달아지고, 깨달아진 말씀이 살이 되고, 뼈가 되는 것입니다. 살과 뼈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말씀이 나의 삶을 이끌고 가는지.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경이나 유교의 경전처럼 어려워서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특별한 경우는 있습니다. 귀가 어둡다든지 말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지식이 연약한 분들이 있습니다. 설교자의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것은 말씀 듣는 자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설교를 지식을 얻고,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듣고, 코메디 프로 보듯이 재미로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은 안 들리고 예화만 들리고 기억됩니다. 오늘 이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자의 말이 권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도록 간청하십시오. “성령이여, 지금 말씀하여 주옵소서. 내가 듣겠나이다.”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마치 신하가 왕의 명령을 받는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하십시오. 말씀을 듣는 태도가 중요합니다.성령님께서 즉시 귀를 열어주시고, 말씀이 아주 세밀하게 들어오실 것입니다. 가버나움의 백부장은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예수님께 와서 간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주겠다 앞장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백부장은 “주님 제 집에 오시는 것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말씀으로 만 하시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 예수님께서 이만한 믿음을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찾아 볼 수 없다고 칭찬하신 가버나움의 백부장의 믿음입니다. 4. 둘째, 내시는 어린 아이처럼 순진하고 단순하게 말씀을 배우려고 하였습니다. 한 나라의 재무부 장관이 빌립 집사에게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오기를 청하였습니다. 진리를 찾는 자의 기본적인 태도가 있습니다. 단순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빌립이 병거에 접근하여 보니까 아사야 53장을 읽고 있었습니다. 이사야가 오실 메시아에 관하여 예언한 말씀이었습니다. 빌립은 정확하게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그 메시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갈파하였습니다. 내시는 예수를 그리스도라 영접하고, 즉시 빌립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5. 셋째, 내시의 믿음은 깨달은 대로 즉시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실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머리로 따져보고 믿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씀은 유희로 듣고 즐기는 철학 강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려지고, 마음에 들어오면, 그 말씀이 나를 자로 잡고 나를 이끌고 가야 합니다. 스미스 위글스워스(Smith Wigglesworth) 목사는 “나는 내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느끼느냐에 따라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바에 따라 움직입니다” 라고 역설하였습니다. 영국의 위글스워드 목사는 미국의 헤긴 목사와 함께 성령의 은사사역을 하는 위대한 사역자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 요동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좋은 눈이라도 2.0 이상입니다. 내 손에 느끼는 것에 따라서 요동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믿음을 따라 움직이십시오. 믿음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내 믿음, 내 양심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감동하심과 감화하심과 인도하심에 따라 움직인다는 말씀입니다. 6.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많이 드리고, 무슨 사역을 많이 하고, 하나님을 영광을 위하여 드리고 바치는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지만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성령과 함께 교제하고, 교통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받기 위하여 항상 성령과 친밀한 교제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보혜사로 와 계십니다. “파라클레이토스” 옆에서 우리를 도우시려고 예수님께서 보내신 분입니다. 그 분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요14:26),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장래 일을 알게 하시는 사역입니다(요16:13). 우리의 미래나 할 일을 그분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인도하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무엇이든지 해 주시려고 하시는데 우리들이 성령님에게 무엇인가 드리려고 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워하시겠습니다. 손자 손녀를 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손녀를 보니 아들과 딸과는 달라요. 손자손녀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무엇을 주어서 기쁘고 사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 호주 손녀는 카톡을 켜 놓고, 자기 엄마와 그냥 즐겁게 놀고먹고 뛰노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 부부는 그 손녀가 놀고먹고 뛰노는 것을 보고 하하 호호 웃고 기뻐하며 카톡을 켜 놓고 봅니다. 아마 하나님께서도 그러실 것입니다. 빌립와 같이 성령사역을 하고, 간다라 여왕의 내시처럼 한 나라의 복음화를 위하여 쓰임받기 위해서 꼭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언제나 성령님과 친밀하게 지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성령의 음성을 수시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감동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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